드림팩토리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본문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있었는데
사서님이 "이처럼 사소한 것들" 책이 올해의 책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셔서
바로 빌리게 되었다.
생각보다 얇은 책이고 글밥이 많지 않아 금방 읽히는 책이었지만
책에서 주장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아일랜드의 한 소도시에 사는 석탄 상인 빌 펄롱의 시선으로 책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섯 딸을 둔 풍족하지는 않지만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가장 펄롱은 여느 날처럼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수녀원으로 석탄 배달을 나가 어두운 창고에서 어린 아이를 발견하고는 그곳에서 벌어지는 불법적인 일들을 알게 된다. 다른 사람들처럼 침묵할지 고민하는 펄롱은 결국 한 여자 아이를 구원해 내며 침묵하지 않고 행동하게 된다.
p.53
펄롱은 트럭에 올라타자마자 문을 닫고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 달리다가, 길을 잘못 들었으며 최고 속도로 엉뚱한 방향을 향해 가고 있었음을 깨닫고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가자고 스스로를 달랬다. 바닥에서 기어다니며 걸레질을 해서 마루에 윤을 내던 아이들, 그 아이들의 모습이 계속 생각났다. 또 수녀를 따라 경당에서 나올 때 과수원에서 현관으로 이어지는 문이 안쪽에서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는 사실, 수녀원과 그 옆 세인트마거릿 학교 사이에 있는 높은 담벼락 꼭대기에 깨진 유리 조각이 죽 박혀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또 수녀가 석탄 대금을 치르러 잠깐 나오면서도 현관문을 열쇠로 잠그던 것도.
p.97
"보니까 친척인 거 알겠네요."
"네?"
"닮았어요." 여자가 말했다. "네드가 삼촌이에요?"
펄롱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젓고는 여자 뒤쪽 부엌을 쳐다보았다. 바닥에 리놀륨이 깔려 있었다. 수납장에는 예전과 다를 바 없이 파란 주전자와 커다란 서빙용 접시가 있었다.
p.120
펄롱은 미시즈 월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미시즈 월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더 옛날이었다면,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었다. 이걸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펄롱이 어떻게 되었을지, 어떻게 살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책은 놀랍게도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책이다.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는 가톨릭 교회와 정부의 운영 및 지원하에 소위 타락한 여성, 방탕한 소녀들을 계몽한다는 취지로 설립이 되었습니다. 이 세탁소는 18세기부터 1996년까지 운영되었고 무급 노동을 강요당하고 심리적, 신체적 학대를 받았으며 수많은 신생아들이 1년도 살지 못하고 사망했다고 합니다.
1993년도에 유해가 발굴되며 끔찍한 사실이 수면위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주인공 빌 펄롱은 우리 주변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소시민이지만,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본인이 받은 사랑을 남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였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침묵을 선택할때 여자 아이의 손을 잡고 부조리한 환경에서 구원해 낸다.
물론 이 책은 펄롱이 여자 아이를 구출해 내는 것으로 결말을 맺지만, 보지 않아도 그 이후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었을지는 알 수 있었다. 막강한 권력과 자본을 가지고 있는 수녀원을 대적한다는 건 어쩌면 생계가 위협받는 위험일수 있을텐데도 여자아이의 손을 잡고 수녀원을 박차고 나온다.
그런 용감함이 나에게도 있을까?
같은 상황속에서도 나는 여자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올 수 있었을까?
어쩌면 침묵은 가장 손쉬우면서도 현재 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간편한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 빌 펄롱같은 사람들이 많아 질수록 결국 세상은 어제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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